웨일즈의 높은 콧대, 콘위 성과 카나본 성
란두드노에서 기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콘위는 웨일즈 북부의 대표적인 관강 명소다. 기차를 타고 다가서면 옛 모습 그대로 중세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쳐진 시가지 모습이 드러난다. 기차역을 나오면 꿀을 잔뜩 바른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배회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아기자기한 중세풍 구시가를 만나게 된다. 하얀 돛단배로 가득한 요트항은 구시가 근처에 자리해 있다. 콘위 성은 요트항에서 바라볼 떄 중후한 윤곽을 드러낸다. 피 비린내 나는 전장의 무대였던 성 안으로 들어가면 엄충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살짝 열려 있는 고성의 창문 너머로 마치 누군가를 제거하려는 왕실의 비밀스러운 밀담이 들리는 것 같다.
두 번째 고성을 찾아가기 위해 다시 기차에 오른다. 순식간에 두로 멀어지는 콘위 성에게 흥얼거리며 작별의 노래를 불러준다. 먼 과거로 돌아가는 짧은 기차 여행이 또다시 시작된다. 입을 탁 벌리고 찬탄할 만큼 잔뜩 콧대를 세운 채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카나본 성이 등장한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만 있어도 그 자태는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각고면려 끝에 세웠을 이 성을 처음 보는 순간, 고성에서 느껴지는 위풍당당한 에너지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다가온다. 멀리서 바라보면 메나이 해협의 물살 위에 떠 있는 카나본성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느네, 그 장관이 실로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애처롭고 구슬픈 노랫가락이 흘러나올 것 같은 기묘하 분위기를 자아낸다. 억울한 혼령들이 남아 있을 법한 분위기라고나 해야 할까. 그 기묘한 분위기에서 이 성을 배경으로 들끓었을 법한 크고 작은 역사적 원한과 음모를 상상해본다.
동화 속 요정 마을, 포트메이리온
카나본에서 웨일즈 고산 열차를 타고 다다른 포스마도그는 린반도와 웨일즈 대자연의 보물 창고인 스노도니아 국립공원 사이에 걸터앉아 이다. 린 반도는 지형적 모양 때문에 '아일랜드 해를 향한 푸른 손가락'이란 별칭이 있다. 일정이 여유로운 여행자는 포스마도그를 베이스로 린 반도와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을 즐기며 웨일즈의 대자연으 만끽한다.
포스마도그 인근에는 포트메이리온이라 불리는 동화 속 마을이 숨어 있다. 포스마도그에서 기차를 타고 3분 정도 달려 민퍼드역에서 하차한다. 그리고 10분 정도 정겨운 시골길을 걸으면 동화 마을이 나타난다. 1976년 문을 여 이곳은 웨일즈 출신 건축가 울리엄스 엘리스가 자신이 수집한 유물·조각 등을 한데 모아 만든 인위적 마을이다. 장난기 어린 요정들이 모여 살 법한 판타지풍의 네버랜드로 꾸며놓았기에 호기심에 이끌린 발걸음이 하나둘 이곳에 모인다.
포트메이리온을 찾아가는 가로수 길 위에 카스텔 데우드래스라는 이름의 고성 호텔이 있다. 윌리엄스 엘리스가 1931년 구입한 빅토리아풍 고성으로 지난 2001년 호텔로 변모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새들이 노래하는 숲을 끼고 있는 예스런 고성을 그대로 보존해 일반인이 머물 수 있는 호텔로 개조한 곳이다. 그러하기에 역사적 기운이 더해진 로맨틱 무드르 자아낸다.
하레시 성에서 잃어버린 역사를 읽다
다시 기차에 올라타 남쪽의 하레실 향한다. 웨일즈 북부 고성 순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지막 성을 보기 위함이다. 기차 차창 너머 스노도니아 산들이 늘어선 경치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기차는 회색빛 가옥들이 뒤엉켜 한 덩어리를 이룬 작은 마을 사이를 누비듯 달린다. 20분 남짓 되었을까. 어느덧 기차는 하레시의 초라한 기차역 철로 위에 안착한다. 차차 너머로 언덕배기에 고성이 보인다. '여긴 또 어떤 곳일까' 흥미를 자아내는 하레시성은 다소 서늘하고 잿빛이 감도는 인상이다.
하레시 성은 콘위 성, 카나본 성과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1세가 13세기 말 웨일즈 반란군의 공격에 대비해 세운 것이다. 불운하게도 하레시 성은 수많은 전투로 인해 엄청난 사상자를 낸 곳이다.
1404년 웨일즈의 영웅이자 잉글랜드 침략에 반기를 든 오웨인 글린더가 이 성을 점령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역시 비운의 영웅이 되어 헨리 5세에 의해 포위된다. 오랫동안 잉글랜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길 염원한 웨일즈 사람들의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진 순간이었다. 훗날 오웨인 글린더는 탈출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맨체스터를 출발해 란두드노를 시작으로 콘위, 카나본, 포스마도그, 포트메이리온, 하레시 등 에일즈 북부의 주옥같은 명승지를 둘러본 여행자들은 하레시에서 가까운 잉글랜드의 대도시 버밍엄으로 돌아와 여행을 매듭짓는다.
웨일즈는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유럽의 마지막 보물 상자와도 같다. 기차를 타고 웨일즈 북부를 여행하다 보면 유럽의 변방으로 치부돼온 미지의 땅 웨일즈, 그곳에 숨어 잇는 고성들이 들려주는 가슴 아픈 역사를 접하게 된다. 또 기차의 차창 너머로 솜털 같은 뭉게구름과 양뗴로 점점이 박힌 들판, 수줍은 듯 고개 내민 고풍스러운 작은 마을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룬다. 한장의 사진처럼 생생한 역사의 공간, 때 묻지 앟은 자연과의 만남은 여행자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머문다.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레 자연을 찬미하고 신의 은총을 재발견하다, '만종' (0) | 2013.03.20 |
---|---|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루 트레인을 타고 1박2일을 달리다 (0) | 2013.03.19 |
민중의 광장 (0) | 2013.03.16 |
고향의 맛과 정이 가득, 가볼 만한 전통 오일장 (0) | 2013.03.15 |
훈훈한 정을 사고파는 오일장으로 가을 마중을 나서다 (0) | 2013.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