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블루 트레인을 타고 1박2일을 달리다
'바퀴 위의 궁전'에 오르다
스위트 31. 블루 트레인에서 배정받은 객차이자 객실의번호였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아늑했다. 탁자에는 생수와 과일이 마련돼 있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반대편 의자에 다리를 걸친 다음, 시선을 창밖에 고정시켰다. 프리토리아를 떠난 블루 트레인이 케이프타운을 향해 1박2일을 달리는 동안 커다란 창을 통해 남아공의 다양한 풍경들, 이를테면 거칠고 쓸쓸한 반사막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훗훗한 살림살이를 간직한 마을 등이 번갈아 펼쳐졌다. 갈마드는 풍경만으로도 넉넉한 시간이었다.
남아공의 로보스 레일과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그리고 인도의 팰리스 온 힐과 더불어 열차계의 '판타스틱 4'로 대접받는 블루 트레인에서 나는 27시간을 머물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 두세 시간은 덜어내야 한다. 열차가 중간 기착지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 승객들을 위한 짧은 투어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케이프타운을 종점으로 삼는 하행선은 킴벌리에서, 프리토리아가 종착역이 되는 상행선은 마티에스폰테인에서 한 박자 쉬어간다.
노던케이프 주 동북쪽에 위치한 킴벌리의 테마는 다이아몬드였다.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지이자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그룹 드비어스의 탄생지가 바로 킴벌리이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내려 빅 홀에 다가섰다. 깊이만 해서 1.6 ㎞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구는 도시의 경제적 젖줄이었다. 1914년 폐쇄될 때까지 2,700㎏의 다이아몬드를 세상에 내보냈다. 이제 더 이상 실리를 얻을수 없는 폐광 앞에서 드비어스의 광고 문구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가 덧없었다. 다이아몬드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학적인 비례에 따라 58면으로 깎아 보석의 반짝거림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세공법인 브릴리언트 컷을 나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가이드는 무색에 가까울수록 다이아몬드의 가치와 상품성이 올라간다고 덧붙였는데, 그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비극적인 분쟁과 지금도 어딘가에서 거래되고 있을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떠올라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했다.
블루 트레인은 미각 체험의 공간이기도 했다. 식사는 물론이고 간식과 주류까지 무제한 이용이 가능했다. 클럽 카에서 우리의 육포와 비슷한 빌통에 맥주를 홀짝였고, 라운지 카에서는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정겨웠다. 기차 여행이 주는 안락함과 낭만이 초면의 어색함을 거두어 가버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오니 소파가 침대로 변해 있었다. 기차의 규칙적인 리듬을 베개삼아 까무룩 잠이 들었고, 브릴리언트 컷보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기차가 캠퍼 댐 부근을 지날 때 얕은 물에 발목을 담그고 있는 플라밍고 떼들이 인사를 건넸고, 헥스리버 밸리를 통과할 때는 푸른빛이 성성한 포도밭이 달콤한 향기를 풍겨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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