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의 가을비
새재의 가을비
새재의 골은 아득하고 깊다
소백산맥 주흘산과 조령산을 타고 넘는 이 깊은 골에서 길손은 문득 '진도아리랑'의 한 대목을 나직이 읊조린다.
터질 듯한 정한이 담긴, 그래서 부르다 보면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그가락.
'문경새재는 웬 고댄가, 구부야 구부구부는 눈물이로다….'
그리고 생각한다.
새재 구비마다에 흩뿌려진 눈물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이 땅에 새재보다 높고 험한 고갯길이 없지 않건만, 왜 유독 여기에서 그처럼 처연한 아리랑이 맴돌고 있는 것일까.
신경림의 장시<새재>는 바로 그 눈물과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의병이 되어 양반의 횡포와 일제의 침탈에 맞서다 들꽃처럼 스러진 뱃사공 돌배.
남한강과 새재 주위의 숱한마을이,백성의 삶이 스민 긴 물길과 가파른 산길이 시어가 되어 흐른다.
난세에는 늘 산이 사람들을 부르는 법이어서,
구한말 새재의 의병 부대엔 실제로도 뱃사공과 장돌뱅이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검단산 돌바위골/ 머루 다래도 따먹고/ 새재 서른 굽이 주흘산으로 갈거나/ 열두 길 벼랑 올라가야/ 하늘 하나 보이고/ 열두 길 바위길 지나야/ 햇볕 한 조각 보여/ 그래서 가난한 사람 활갯짓하고 모여 사는/ 새 세상이 있다더라….
굶주림에 지친 무지렁이들은 기어이 참판집 곳간을 열어젓히고 일본 순사를 요절 낸다.
배곯은 설움과 나라 빼앗긴 울분 모두 그러모아 의병이 된 후, 그들은 맹세한다.
한 고을 일어서면 열 고을 눈을 뜨고 열 고을 일어서면 온 나라에 뜨거운 바람 불리라.
연풍과 풍기를 치고, 문경과 괴산을 치고, 새재 구비마다에 벗들의 주검을 쌓고 쌓으며.
돌배는 산적 떼의 괴수로 몰려 교수대에서 죽었다.
그의 원혼이 떠돌고 있을 고즈넉한 산길에 종일토록 비가 내린다.
늙은 어미의 시름도, 낭군 찾아 객지의 주막거리를 헤매던 정인의 통곡도, 그리고 수많은 돌배의 아우성과 절망동,
새재 어귀의 눈물 같은 가을 비에 조용히 젖어가고 있다.